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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

아버지 서진이가 그린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아빠는 서진이의 그림을 보시며 "할아버지 얼굴을 길게 안그리고 네모나게 그렸네"하시며 웃으셨다. 어진이 그림. 어진아~두 분 어디 보고 계신거니?ㅎㅎ 할머니는 머리카락이 똑같고, 할아버지는 어째 개구쟁이 같다. 카메라에 아빠엄마의 모습을 담는 것이 나에겐 어색한 일이다. 같이 찍는 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우리 아빠.... 아빠때문에 내게 엄마아빠의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어진서진이를 엄마아빠앞에 앉히고 카메라를 들자 역시 어색해하시는 엄마아빠.. "어진아~서진아~쟈스민 봉오리 생겼어." 호들갑을 떨었던 게 화요일이었는데 다음날 바로 이렇게 활짝 열린 꽃 한송이 볼 수 있었다. 햇빛도 가려지고, 가지틈에 불편한 자리였다. ... 오늘 우리 아부지.. 더보기
쟈스민 요 요 예쁜 녀석.. 그 이름은 쟈스민. 작년 5월의 어느 토요일 낮, 같이 사는 이씨 일당들 때문에 열이 받아 좀 식히려고 집을 나섰다. 머리라도 볶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미용실에 가는 길에 내 발길을 먼저 붙들었던 것이 초록이들이었다. 길에서 팔던 초록이들이었다. 한참을 이리보고 저리보고 난 후에 주문한 건 "안죽는 놈~!"이었고 아저씨가 추천해주신 것이 쟈스민과 다육이 두 개였다. 죽일래야 죽일수 없다고....^^;;; 이미 활짝 핀 보라꽃과 봉오리들이 달려있는 화분을 들고 집으로 들어왔더니 엄마의 심경에 무슨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하는 어진이는 환호했고 나는 기분이 조금 말끔해졌다. 쟈스민은 물을 많이 먹는데 물이 부족하면 잎이 뒤로 젖혀졌다. 그래서 맘에 들었다. 창을 열어두면 바람을 타고 향이 .. 더보기
기록 아이들은 늘 무언가를 쓰거나 그리고 오리는 일들을 쉬지 않는다. 스케치북은 감당이 안되고 아까울 때도 많아서(미안하다, 사랑한다.ㅎ) 이면지를 사용하는데 쓸만한 종이가 없을까 찾다가 발견된 종이다. 무언가가 기록된 십수장의 종이.. 정체가 무엇인지 헤아리는 데 5초쯤 걸렸는데, 신생아 '이어진'의 일상에 관한 기록이었다. 날짜는 년도 표시없이 11월 14일부터 시작된다. 1031일 생일인 이어진, 출산한 병원에서 1박, 조리원 2주 생활 후 아이와 집에서 보낸 첫 날로 추측된다.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남편은 출근하고, 핏덩이 하나와 덩그러니 집에 남았을 때의 두려움과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던 내 현실.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울컥하며 눈물을 쏟았던 일 말이다. 그 두려움이 기록을 남기게 했을까. 종이엔 .. 더보기
꿈꾸다 꿈에 보이더라며, 준서맘이 문자를 보내왔다. 둘째가 생길 것 같다는 예지몽을 꾸어준 것도 준서맘이었고, 이사했다기에 구경가보니 큰 숲을 집으로 삼았는데 장관이었다는 꿈이야기를 전해준 것도 준서맘이었는데, 그 꿈 이후 책꾸러기에서 100권의 책선물을 받았다. "개꿈이지..지가 무슨..."했던 어진아빠 말이 쏙 들어갔다. 그렇게 내게는 신기하고 신통했던 준서맘이 또 꿈을 꾸었다니 귀가 솔깃해질 수 밖에... 큰집으로 이사를 했다고 해서 구경가보니 서진이가 집을 사주었다며 어진애비입이 귀에 걸렸더란다. 그러면서 아들래미한테 잘하라고..ㅎ 서진이 앞세워 로또 사러 가자고 했더니 단칼에 거절하는 어진아빠. 몇년전이었던가. 느닷없이 "로또나 사볼까." 실없이 내뱉던 어진아빠말에 마음시리고 짠하던 기억이 있어 더 이.. 더보기
좋은밤 서진이가 잠든 후 삼십여분이 지나 다시 방으로 들어가, 서진이 이마에 입술을 대고 열감지를 해보니 긴가민가했던 열이 없는 것 같아 깊고도 편안한 숨을 내쉬었다. 서진이의 오늘, 일진이 영 좋지 않았다. 착지능력도 없는 것이 소파에서 현관 타일바닥으로 떨어져 울다 오전낮잠에 들어서는 신통찮게 잠깐 자고 나와 계속 칭얼대고, 오후에도 서진이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초록괴물책이 배달되었을 때 잠깐, 누나가 유치원에서 돌아왔을 때 잠깐 반가움을 표시하고는 엄마에게만 매달려 있으려고만... 누나 도서관 수업 다녀오며 유모차에서 또 잠이 들었다 깬 서진이는 머리아프다, 배아프다며 안아달라는데 밖에서 두시간여를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하고 돌아온탓에 어찌나 다리가 풀리고 힘이 달리는지 서진에게 "잠깐만, 잠깐만.."을 외.. 더보기
친밀감 도서관 가는 유모차안에서 서진이가 모처럼만에 자주는 바람에 어진이 동화수업 들여보낸 후 여유롭게 커피도 마시고 책을 둘러보고 있자니 이게 왠 호사인가 싶었다. 빼곡한 책들 사이에서 눈에 들어온 책등의 '친밀감', 그리고 노랑은 우울했던 내게 당연한 끌림이었을까.. 그런데 책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슬픈 밤이다. 나는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으려 한다. 대출절차를 거친 후 어진이를 기다리며 넘긴 몇장의 페이지 속에서, 나는 며칠간의 지독한 우울감을 떨쳐버릴만한 글귀를 만났다. 아이들 특유의 생기넘치는 혼란스러움. 특별할 것도 없는 이 짧은 글이... 몸이 아팠었다. 앉아있기가 힘들어 아이 둘을 두고 오랜 잠을 잤다. 유치원담임선생님의 전화 통화에선 이해할 수 없는 어진이의 행동에 대해 들었고, 아이들은 여.. 더보기
잔소리 나는 엄마의 잔소리가 싫었다. 엄마의 잔소리는 언제나 옳은 말씀이었기에..... .........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진에게는 그림책을 들이대며 생각주머니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정작 내게는 '시작'이라는 말이 필요할만큼 그간 참 머리를 비우고 살았다. 서진이와 놀면서도 간간히, 밥준비하면서도 간간히, 때로는 서진이를 방치하면서 읽으니 서진이가 입을 연다. "책 좀 그만 읽어." 발음은 또렷하지 않으나 서진이가 어느새 '~~좀..'이라는 말을 구사하여 잔소리형으로 말하고 있었다. 푸하하..웃음이 났다. 잔소리가 싫지 않을 수도 있구나. 어진이가 일곱살이 되었다. 어진이 친구 엄마가 딸아이와의 관계가 매끄럽지가 못하단다. 똑부러지고 예쁜 아이인데, 엄마에게는 따박따박 대들줄도 아나보다. 어진이도 그렇다하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