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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책이야기

태양의 동쪽 달의 서쪽 -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소녀의 이야기

재키 모리스 지음. 국민서관

예전에는 비현실적이고 결과가 뻔하다는 이유로 옛이야기를 즐겨 읽지 않았어요. 그런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옛이야기들을 아이들이나 어르신들(병원에서 책을 읽어드려요)께 읽어드릴 때 세대 간 서로 교감과 공감을 하며 이야기의 생명력을 느끼곤 합니다. 서사방법은 비현실적이라도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현실적이면서 환상의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지요. 그래서 다른 나라의 민담을 접해 본다는 게 무척 기대가 되었습니다.

제목과 표지그림부터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태양의 동쪽 달의 서쪽]은 소녀와 백곰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 소녀의 가정은 모든 것이 풍족하고 행복했지만, 신문 기사인 아빠가 정부에 반하는 기사를 쓴 이후에 가정은 몰락하고 맙니다. 백곰은 소녀에게 자신과 함께 간다면 소녀의 가족이 평안해 질거라고 약속을 합니다. 소녀는 백곰을 따라 집을 떠납니다. 우리의 옛이야기에서도 부모나 가족을 위해 스스로 희생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하지만 소녀는 백곰에게서 포근함과 따뜻함을 느낍니다. 아름다운 백곰의 성에서 소녀는 부족함 없는 생활을 하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짙어 갑니다.

소녀의 눈물에 마음이 약해진 백곰은 소녀에게 한달 하루의 시간을 시간을 주며 금기사항을 전합니다. 하지만 그 금기사항을 어긴 소녀는 마법에 걸린 백곰의 비밀을 알게 되고, 백곰은(마법에 걸린 왕자) 태양의 동쪽과 달의 서쪽에 있는 트롤 여왕의 성으로 떠나게 됩니다.

왕자를 찾아 가는 소녀의 여정이 시작되지요.

태양의 동쪽, 달의 서쪽은 찾기 힘들고 도달하기 고단한 곳이라는 걸 뜻하겠지만 거리상의 의미보다는 그 과정의 많은 역경을 짐작케 해주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실수로 왕자를 잃었지만 소녀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에 힘을 얻고 길을 나섭니다. 가는 길은 멀기만 하지만 아름다운 묘사와 좋은 글들이 많아 쏙 빠져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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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이슬이 대롱대롱 달린 거미줄이 앞장서서 은빛 길을 내주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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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쉴 때도 좋았고 정말 좋은 친구도 사귀었지만, 결국 그 모든 과정을 거쳐야만 사랑하는 이에게 닿을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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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원할 때는 조심하렴. 소원이 이루어지고 나서도 그걸 정말로 바랐던 건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으니 말이다. 염원이란 것이 시시각각 엉뚱한 장난을 쳐 사람을 뜻밖의 궁지로 몰아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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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얼굴에 불어 닥치는 바람은 우리는 현명하게 한다네

조력자인 세 자매와 바람을 만나는 동안 소녀는 성장을 하고 진정한 사랑을 깨달아 갑니다.
드디어 간절히 그리워하던 왕자와 재회하고 트롤의 공주와의 결혼식 날, 마법은 풀리고 트롤여왕과 트롤공주는 먼지가 되어 사라집니다. 해방이 된 거지요. 왕자와 소녀는 드디어 사랑을 이루게 될까요?

왕자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 소녀를 선택했지만 그 사랑하는 마음마저 부정하고 싶진 않아요. 또 소녀는 오랜만에 그녀의 이름을 불러준 누군가(독자에게 소녀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려준..)의 진정한 마음을 깨닫습니다. 때로는 방법이 서툴렀어도 그 진실됨이 전해진 거지요.

때로는 사랑이 변하기도 하고, 그 대상이 옮겨가지도 하지만 사랑을 하며 또는 사랑을 찾아가는 경험은 사람을 성장시키고 삶을 더욱 의미있게 만들어 주는거라 믿습니다.

깊은 여운을 주는 마지막 장면에요.
박하향의 시원한 바람이 이는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