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펫. 게리 루빈스타인 글 . 마크 펫 그림. 두레아이들
실수하지 않는 아이 베아트리체의 아침 풍경입니다.
깔끔하게 옷을 갈아 입은 베아트리체는 햄스터에게 먹이를 주고 남동생의 점심 도시락을 챙깁니다. 오늘 도시락은 땅콩버터와 잼을 바른 빵인데 똑같은 크기로 떠내어 바르지요. 식탁 벽에는 베아트리체의 신문기사가 자랑스레 걸려 있어요. 오늘 할 일을 적은 메모지와 우수한 성적의 성적표도 실수하지 않는 베아트리체를 설명해 줍니다. 집을 나서며 현관 앞에 장사진을 이룬 취재진들과 마주치는 일도 익숙해 보입니다.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아이의 명성이 대단하군요!
웬일인지 베아트리체의 얼굴이 어둡네요.
이 날은 베아트리체가 실수할 뻔한 일이 생겼거든요. 다행히 실수하지는 않았지만 실수할 뻔한 일이 계속 떠올라 하루종일 시무룩합니다. 얼음판에서 친구들과 놀고 싶지만 넘어질까 두려워 그냥 집으로 돌아오지요.
오늘밤 공연을 앞두고 걱정하는 베아트리체에게 아빠가 말합니다.
“걱정 마. 너는 실수하지 않을거야.”
하지만 많은 사람앞에서 공연하던 베아트리체는 우스운 모습으로 생애 첫 실수를 하고 맙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베아트리체는 모든 것이 변했어요.
매일 집앞으로 몰려들던 사람들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지만 베아트리체는 아이다운 웃음을 찾았습니다. 잼이 얼굴에 묻어도, 얼음판에서 엉덩방아를 찧어도 베아트리체는 즐겁게 웃습니다.
공연에서 물을 뒤집어쓰며 실수하는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아..어떡해..'하는 탄식이 흘러 나왔어요. 스스로 실수를 허용하지 않으며 자라온 아이에게 얼마나 큰 상실과 슬픔일까 걱정이었거든요. 그런데 베아트리체가 웃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안심이 되었는지 몰라요. 그 웃음은 완벽해야만 한다는 스스로의 부담감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타인의 기대와 시선으로부터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웃음이었을거에요.
베아트리체가 왜 이토록 실수를 두려워하는 아이로 자랐을까 생각해보니, 아빠의 모습에서 그 대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수할까 걱정하는 아이에게 아빠는 "걱정마, 너는 실수하지 않을거야."말합니다. 짧은 아빠의 말 속에서 아이를 격려하거나 위로하는 대신 완벽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베아트리체는 약한모습을 숨기고 완벽주의자가 되어야만 했겠지요. 한발짝도 내딜 힘이 없는데 어거지로 그 길을 뛰어가며 아이가 참 힘들었겠다 싶습니다.
베아트리체의 모습에서 저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이는 남들 앞에서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는 걸 싫어해요. 일곱살 때 유치원에서 발레를 배운 적이 있었는데 수업을 참관하던 유치원 선생님이 전해주신 말씀이 수업을 듣던 아이가 갑자기 자리에 앉더니 움직이지 않더랍니다. 다른 친구들은 잘 하는 것 같은데 자신은 유연성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었는지 더 이상 따라하지 않기로 한 것이죠. 더 자라면서도 이런 모습은 여전했는데 최근에 의미있는 경험을 했어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줄넘기인증시험을 봐야 했는데 맘처럼 되지 않자 아이는 다시는 줄넘기를 하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올해 3학년이 되어서, 싫다는 아이를 설득해서 방과후 줄넘기를 시켰는데 두어달만에 아이는 반 줄넘기경기에서 여자아이 중 1등을 했답니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줄을 넘던 아이였는데 그걸 잘 넘어섰다는 것이 저도 기뻤어요.
그 어떤 부모도 힘들고 외로운 완벽주의자 모습의 아이를 원하지는 않을거에요.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발전하고 그 속에서 보람과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잔디밭에 엎드려 책을 보고 있는 마지막 장면의 베아트리체의 모습에서 더 없는 편안함이 느껴집니다. 오랫동안 포장되었던 모습에서 벗어나 자유로움과 안정감을 찾았기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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