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숙희 지음. 책읽는 곰
아이는 말을 좋아합니다.
아이는 굳센 다리로 어디든 갈 수 있는 말을 좋아하지만
아이는 고삐에 매인 말처럼 어디에도 갈 수 없습니다.
처녀가 된 아이는 결혼을 하고 다섯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엄마의 다섯 말은 모두 자라 엄마의 품을 떠납니다.
엄마가 되고 싶었던 모습으로, 엄마가 살고 싶었던 세상으로...
그리고 엄마는 하얀 도화지 가득 말을 그립니다.
..........
칠순이 넘은 친정엄마가 제작년 한글공부책을 갖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들을까 부끄러우셨는지 아주 소곤소곤요.
생각해 보면 막내딸인 제게 말씀하시는데도 큰 용기가 필요하셨나 봅니다.
어떤 물건을 사용하실 때 필요한 메뉴얼을 찾아 보시기도 하시고,
생활에 전혀 불편함이 없으셔서 한글공부를 하시겠다는 엄마의 말씀이 의외였어요.
읽는 건 문제가 없으시지만 고단한 삶을 꾸리시며 글을 쓸 기회가 많지 않으셨던 엄마는
쓰는 것이 자신이 없으셨었나 봅니다.
둘째 아이 하던 한글공부 책과 그림책 몇권을 드렸더니 엄마는 참 열심히 쓰십니다.
노트에 쓰인 엄마의 글자는 반듯반듯 얼마나 예쁜지요,
어느 날밤엔 책을 보시다 연필을 손에 꼭 쥔채 잠이 들었다고 아버지가 살짝 귀띔해주십니다.
엄마의 삶을 생각하면 늘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이 나곤 하는데
'엄마의 말'의 엄마가 정말 내 엄마 같습니다.
엄마의 꿈을 맘껏 대신 펼치지 못했다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도 들고요.
지지난 주말에 친정에 갔을 때 스케치북, 색연필을 엄마께 스윽 내밀었어요.
"이거 엄마 해.."하면서요.
집에 돌아오는 길 친정아버지가 아이들 물건 빼놓고 간다며 그 스케치북을 챙겨주시는데
아이들꺼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엄마가 좀 멋쩍어 하십니다.
엄마가 하얀 도화지에 무엇을 그리실지 궁금합니다.
자식들이 올때면 공부하신 노트를 어딘가에 숨겨놓듯이 스케치북도 그러하시겠지요.
엄마의 말.
소중한 우리 엄마들의 마음 속 소녀를 깨워주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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