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사회문화재단에서 후원하는 '그림책과 이야기'강연이
기적의 도서관에서 진행중이다.
11월 11일 첫시간에 '옛이야기와 그림책'이라는 주제로
서정오 작가님을 뵐 수 있었다.
아침에 '빨리빨리'를 백만번쯤 소리치며 아이들을 등원시킨 후에 부랴부랴 달려간 기적의 도서관.
덕분에 좀 여유있게 도착해 커피 한 잔 마시며 나누어 주신 자료읽다가
강의들으며 차마시는 학생들의 태도가 영 마뜩치 않다는 도올 선생의 말이 문득 생각나
채 식지않은 커피를 원샷하는 성의로 작가님 맞을 준비를 마쳤다.
작가님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듣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었던
옛시절에 관한 이야기로 강의를 시작하셨다.
여름이면 마당 멍석위에 둘러앉고, 겨울이면 화롯불가에서 들었던 옛이야기.
작가님의 유년시절엔 '칠봉아제'가 계셨다.
칠봉아제는 마을의 이야기꾼이셨는데 낮에는 농사를 짓고,
저녁이면 피리부는사나이처럼 아이들을 모아 이야기를 들려주셨단다.
참새를 많이 잡는 방법을 알려줄게.
좁쌀을 술에 담갔다가 멍석에 넣고 주위엔 도토리를 놓아라.
참새가 좁쌀을 먹고 술에 취하면 기분좋게 도토리 베개를 베고 잠이 들 것이다.
그러면 망태에 주워담아라.
정말인 줄 알았던 작가님이 시도해보려다 불행히도?
좁쌀을 술에 담그다 아버지에게 들켜 야단만 맞으셨단다.
나중에 들은 칠봉아제 하신말
"몰래 했어야지!"ㅎㅎ
작가님의 유년시절의 기억에 나도 너무 즐거워졌다.
이 시대의 우리 아이들에게도 칠봉아제가 있는가~
나는 부러움과 아쉬움이 교차했고
작가님은 옛이야기의 매력에 대해 말씀을 이어가셨다.
퀴즈
다음 중 옛이야기 주인공으로 알맞지 않은 인물은?
1. 가난한 나뭇꾼
2. 마흔이 다 된 노총각
3. 계모한테 구받받는 아이
4. 슬기롭고 지혜로운 부잣집 아들(엄친아)
여기서 옛이야기에 등장하는 이름에 관한 이야기.
영어권 옛이야기에 제일 많이 나오는 이름은 '잭'
독일에는 '한스'
러시아에는 '이반'이란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옛이야기에는 '가난한 나뭇꾼'처럼 이름조차 없는 인물이 등장한다.
또한 형,아우가 등장하는 이야기에서는 아우가
호랑이와 토끼 중에는 토끼가 주인공인 것처럼
옛이야기들은 1%의 부자가 이니라 99%의 보통사람, 약자를 위한 이야기이다.
또 퀴즈
주인공은 언제 복을 받나? 착한일 했을때? 물론 그렇다.
하지만 꼭 착하지 않아도 복을 받는다.
새끼서말에 나오는 총각은 우연찮게 부자가 되었다.
'강아지똥'의 권정생님의 말처럼 '신은 쓸모없는건 이 세상에 내지 않으셨다'로 대변할 수 있다.
옛이야기에서는 아주 하찮은 존재도 행복해진다.
이 세상 누구든지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작가님이 들려주신 옛이야기 하나
마흔이 다 되도록 장가는 못간 총각이 살았어.
장가못갈 이유도 없는데 이상하게도 성사가 안돼.
"무슨 이런 팔자가 다 있나. 짚신도 짝이 있다는데...나는 죽어버릴란다."
총각은 사나운 호랑이가 산다는 고을의 높은산으로 향했어.
100사람이 모여야 넘을 수 있다는 산에 잡아먹히려고 혼자 간거지.
산에서 정말로 바위뒤에 있던 집채만한 호랑이를 만났는데 잡아먹질 않아.
총각은 호랑이 앞으로 왔다갔다~ 얼레리꼴레리~하며 놀려도 안잡아먹네
"왜 안잡아먹니?"
"너는 사람이니 안잡아먹는다"
"무슨 말이야?"
"내일 보면 알거야"
다음날 100사람이 모여 산을 넘는데
호랑이가 눈썹을 하나 떼어 총각에게 건네주며 눈에 대고 사람들을 보라고 하네
총각이 호랑이눈썹으로 사람들을 보니 아, 글쎄 사람들이 짐승으로 보여
"저 중에 사람이 몇이 보여 못잡아먹는단다"
그래서 100사람이 뭉치면 산을 넘을 수 있었던거야.
그 중에 사람이 몇 있으니말이야
"니가 장가를 못간 건 사람짝을 못만나서야
이 눈썹으로 사람짝을 찾아"
총각이 호랑이 눈썹으로 보니
혼담이 오갔던 윗마을 처녀는 닭으로 보이고
건너마을 처녀는 오소리로 보이더래
그런데 재너머 마을 딸은 사람으로 보이네?
총각은 재너머 처녀와 결혼해서 어제까지 잘 살았대
작가님의 목소리로 듣는 이야기가 어찌나 재밌던지
또 들려주세요~조르고 싶어졌다.
옛이야기의 또 다른 매력
옛이야기는 개연성이 허술하다는 지적을 받곤 한다.
재미있는 소설을 보면 교묘한 복선이 있고, 반전이 있다.
소설이나 창작은 꿈을 따르되 합리적인 방법으로 간다.
옛이야기는 합리적인 사고로부터 자유롭다.
오로지 주인공이 얼마나 행복해지느냐가 관건이다.
옛이야기의 비합리는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대리만족을 하기위한 장치의 극대화이다.
서사방식은 비현실적이지만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작가님이 들려주신 옛이야기 둘
옛날에 옹기장수가 살았어.
가난하게 살다가 사람들이 옹기라도 팔아봐라 그래서 장사를 시작한거지
옹기를 짊어지고 바다로 가는 길,
고개넘어가다 잠시 쉬는데 회오리 바람이 불어 피같은 옹기가 모두 깨졌어.
억장이 무너지니 옹기장수가 원님에게 갔어.
원님이 이방에게 "배가 여러대인 부자중에 배로 장사나간 사람이 있느냐?"물었어.
"김부자가 동쪽으로 장사를 가고, 이부자가 서쪽으로 장사를 갔습니다."
원님은 김부자와 이부자에게 용왕님께 무어라 빌었는지 물어.
김부자는 서풍이 불게 해달라고 빌고
이부자는 동풍이 불게 해달라고 빌었다 했지.
"그래서 회오리바람이 분 것이로구나
옹기장수의 옹기가 깨진 건 두 사람 탓이니 옹기값을 물어줘라~"
그래서 옹기장수는 옹기를 팔아서 부자가 됐대
그저께까지 잘 살았지~
이야기가 비현실적이라고 해서 가치가 없는 건 아니다.
옛이야기 들려주는 방법
1. 텍스트에 너무 얽매이지 마라.
융통성있게 건너뛰어도 되고 살을 붙여도 된다.
2. 읽어주기보다 들려주어라. 눈을 맞추어라.
들려주는 사람도 즐거워야 한다.
(아이가 책읽어달라고 하는게 피곤한 한 아빠가
"아빠는 글 모른다."라고 말했다는 일화를 들려주시며..)
3. 불친절해라
너무 친절하게 설명하려 들지 마라
멧돌, 지게 등 용어에 얽매이지 마라
옛이야기의 생명은 서사이다. 묻지 않는 한 설명하지 마라
4. 무책임해라
현실적이지 못한 상황에 관해 "어떻게 그렇게 했어"물으면
"그러게"
"나도 몰라"라고 말해라
어떤 질문도 받아낼 수 있다.ㅎㅎ
옛이야기에 대한 말씀을 마무리하시며 그림책에 관한 말씀으로 강의를 끝내셨다.
옛이야기가 이야기 위주로 나온건 말이 제일 중요한 도구여서가 아니라
손쉬웠기 때문이다.
요즘 그림책이 다양한 그림, 모습으로 나오는 걸 적극 지지한다.
하지만 너무 사실적인 그림은 상상력을 방해한다.
그림과 글은 서로 보완적이어야 한다.
어긋나도 안되고, 너무 일치하면 재미없다.
글,그림은 한사람이 하는게 바람직하다~시며
그림작가와 교감이 어려웠던 경험담을 들려주시기도 했다.
후딱 지나버린 두 시간이 아쉬웠다.
정신없는 도깨비에 사인을 받았다.
칠봉아제의 모습이 이렇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