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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책이야기

모르는 척 - 모르는 척 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할 때..



우메다 슌사쿠 지음. 길벗어린이

[모르는 척]은 학교폭력의 가해자인 야라가세 패거리와 피해자 돈짱 그리고 모르는 척하는 방관자 ‘나’를 중심으로 집단폭력의 실상과 심리를 세밀하게 보여줍니다.

패거리들의 괴롭힘은 잔인하면서도 교묘합니다. 미술 시간에 돈짱의 그림을 물감으로 뭉개고 연극연습을 핑계 삼아 공공연하게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지요. 하지만 돈짱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선생님은 상황을 민첩하게 알아차리지 못하고, 심지어 모두들 앞에서 “너희들 친구를 괴롭히는 일은 없겠지?”라고 말하는 등 안일한 태도를 보입니다.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나’조차도 ‘모르는 척’하기로 했으니 괴롭힘으로부터 돈짱을 도와줄 이는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닌 방관자 ‘나’는 괜찮을까요?


나는 돈짱의 원망스런 눈빛에 커다란 무게를 느끼고, 그 언찮은 기분을 괜히 길고양이에게 화풀이하고야 맙니다. 나와 돈짱의 분노는 고양이나 까마귀같은 약자로 향하며 또 다른 폭력을 낳고 악순환이 계속됨을 보여 줍니다. 또한 야라가세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폭력을 당하는 모습은 영원한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다는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고리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끊어야 하는 할까요.

어느 날 교실에 작은 소동이 일어납니다.


치카코가 돈을 도둑맞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치카코의 오해로 밝혀지면서 치카코가 새로운 표적이 되는가 싶었지요. 하지만 치카코는 당당합니다. 자신의 실수를 사과하는 동시에 아이들의 비겁함과 부조리함을 말하지요. 치카코의 당당함에 아이들은 시선을 피합니다. 치카코가 주눅이 든 모습을 보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았어요. 치카코는 암묵적으로 새로운 따돌림의 표적이 되고, 다수의 아이들은 군중 속에 자신을 숨긴 채 또다시 방관자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까요. 치카코의 용기가 대단해 보이는 반면 약하기만해 보이는 돈짱의 모습이 더욱 안타까웠어요.

심부름으로 슈퍼에 간 나는 물건을 훔치는 돈짱의 모습을 목격합니다. 물론 야라가세 패거리가 시킨 일이었지요. 야라가세는 나에게 너도 공범이라고 하는 듯 샤프연필 한 자루를 쥐어줍니다. 원치않게 야라가세 패거리에게 휘말리게 되자 친한 친구였던 세이야와 요칭이 나를 모르는 척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돈짱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용기를 내어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지만 엄마아빠의 모습은 다시 한번 절망하게 만듭니다. 신문을 보는 아빠와 설거지하는 엄마는 나와 눈도 맞추지 않은 채 가벼운 충고로 넘깁니다.

하나의 사건을 치르며 돈짱이 전학을 가고 그 간의 일이 다 알려진 후에도 ‘우리 아이가 아니라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부모의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모습이 우리 모두의 현실은 아닐런지 씁쓸합니다. 친구들도 모르는 척, 어른들도 모르는 척. 아이들은 어디에서 도움과 위로를 받아야 할까요.

그래도 이 책에는 절망 속에서 희망의 빛을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알고 모르는 척 하지 않는 치카코와 강변에서 어묵을 파는 포장마차 아저씨이지요.

싫다는 말을 확실히 하지 않는 것도 나쁘다고 생각합니다.”(치카코)

 아이들의 폭력에 개입한 댓가로 포장마차가 모두 망가져버린 후에도 아저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역시 모르는 척해서는 안 되는 거야.
마음속에 간직한 등불이 꺼져 버리면 어떻게 되겠니?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하면서(또는 개학을 앞두고) 117 전화가 늘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개학을 두려워한다고 해요. 모르는 척하는 어른과 학생들이 존재하는 한 즐거워야 할 학교는 폭력의 온상지가 될 수 밖에 없겠지요. 스마트폰이 일반화되면서 따돌림의 양상 또한 다양해지는 것 같아요. 내 아이뿐만 아니라 주위 아이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넓은 시야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졸업식 날, 절망하며 학교를 떠났을 돈짱의 빈자리를 마음 아파하던 나는 모두 보는 앞에서 의자에 올라가 소리칩니다. 모르는 척하면서 졸업을 하고 중학생이 되는 것이 싫다고 말이에요. 나는 창피했지만 가슴이 후련해짐을 느낍니다.


눈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새하얀 눈이 온 세상을 덮고 나면 새로운 발자국을 낼 수 있겠지요.
더 큰 세상과 마주하게 될 ‘나’를 응원합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가면 속 아이의 눈물이 우리 모두의 눈물이 되지 않기를 바래 봅니다.